2026. 9. 18. 15:51ㆍINSIGHT
생성형 AI는 이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거의 모든 영역에 깊숙이 자리잡았다.
자료 조사와 아이디어 발굴, 카피 작성, 이미지·영상 제작은 물론 미디어 플래닝과 캠페인 운영, 성과 리포팅까지 활용 범위가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실무에서 AI는 더 이상 특정 단계에서만 사용하는 보조 도구가 아니다. 업무의 시작부터 끝까지 속도를 높이고 더 많은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해 당연하게 활용하는 기본 도구가 됐다.
하지만 결과물이 빠르게 나온다고 해서 업무가 언제나 그만큼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클라이언트와 타깃의 상황에 맞게 표현을 조정하고, 사실과 수치의 원출처를 확인하며, 결과물을 브랜드의 언어로 다시 다듬는 과정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AI를 통해 제작 시간은 줄였지만, 검토와 수정에 다시 적지 않은 시간을 쓰는 일은 현장에서 흔하게 일어난다.

이를 ‘AI 수정세(Revision Tax)’라고 부른다. 옵티마이즐리(Optimizely)가 7개국 마케팅 리더 2,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6%가 매주 최소 3시간 이상을 AI 결과물의 편집과 사실 확인, 오류 수정에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 Optimizely, 2026 Global Data Study)
이러한 현상은 AI가 업무를 줄여준다기보다, 업무의 무게중심을 바꾸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과물을 만드는 시간은 줄어든 반면,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완성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의 비중은 더 커지고 있다.
AI시대의 새로운 병목은 결과물을 만드는 능력보다, 적절한 방향을 선택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능력에 있다.
결과물보다 먼저 목적을 설계한다
실무에서 AI를 활용할 때 가장 먼저 살펴야 하는 것은 구현 방식이 아니다. 이 결과물이 왜 필요한지, 캠페인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정의하는 일이다.

최근 진행한 NYPC 캠페인에서도 대회의 새로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알리고 참가자의 관심을 끌기 위한 영상 콘텐츠 제작이 필요했다.
초기에는 게임처럼 보이는 하나의 티징 영상으로 주목도를 높이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러나 실행 단계에서 다시 살펴보니 영상이 해결해야 할 목적은 하나가 아니었다. 새로운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대한 관심을 만드는 것과, 대회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실제 참가로 연결하는 것은 서로 다른 과제였다.
NYPC | NEXON YOUNG PROGRAMMERS CUP - TEASER
NYPC | NEXON YOUNG PROGRAMMERS CUP - THE GAME BEGINS (Full ver.)
이에 하나는 새로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게임의 서사처럼 보여주는 티징 영상으로, 다른 하나는 대회의 새로운 정체성을 상징하는 인물을 통해 변화 내용을 설명하고 참가를 직접적으로 유도하는 모객 영상으로 나누어 설계했다. 두 영상은 같은 캠페인 안에 있었지만 각기 다른 역할을 맡았고, 목적이 구분되자 메시지와 내러티브, 정보의 깊이도 자연스럽게 달라졌다.
중요한 것은 AI를 활용해 영상 시안을 얼마나 빠르고 정교하게 구현할 수 있는지가 아니었다. 각각의 결과물이 캠페인 전체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목적’을 먼저 정의하는 일이었다.
AI가 여러 아이디어와 표현 방식을 제안할수록 기획자는 그중 무엇을 선택할지 뿐만 아니라, 왜 그것을 선택해야 하는지까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만들 수 있습니다”를 넘어 “이 목적을 위해서는 이렇게 만들어야 합니다”라는 방향을 제안하는 것이 기획의 역할이다.
무의미한 수정세를 줄이는 3가지 기획의 기준
그렇다면 AI가 만든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정제해야 할까.
실무에서는 AI 결과물을 브랜드의 자산으로 바꿔내기 위해 크게 세 가지 기준을 적용한다.
1. 목적과 브랜드의 방향에 맞는가
먼저 캠페인이 해결해야 할 핵심 문제를 정의한다. 클라이언트의 요청 사항과 실제 목적을 구분하고, 타깃의 언어와 감정을 함께 확인한다.
AI에도 목적과 타깃, 톤앤매너, 제약 조건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이후 생성된 결과물 가운데 브랜드의 페르소나와 가치에 가장 부합하는 것을 선택한다. AI가 만든 평균적인 초안을 다른 브랜드로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결과물로 바꾸는 과정이다.
2. 실제로 공개해도 되는 결과물인가
목적에 맞는 결과물을 골랐다면 공개 이후의 영향까지 살펴야 한다.
사실과 수치, 제품 정보와 원출처를 확인하고 저작권과 윤리적 문제는 없는지 검토한다. 브랜드 평판과 소비자의 신뢰, 사회·문화적 맥락에 따라 의도와 다르게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결과물을 만드는 것과 ‘시장과 고객에게 내보내도 되는 결과물’을 판단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여기에는 프로젝트의 전체 맥락을 이해하는 기획자의 검증과 책임이 필요하다.
3. AI와 사람의 역할이 적절하게 설계됐는가
AI가 수행할 업무와 사람이 판단하고 책임질 영역을 작업 초기부터 구분해야 한다.
자료 정리와 초안 작성, 다양한 시안 탐색에는 AI의 속도와 효율을 활용한다. 반면 문제 정의와 방향 설정, 팩트 검증, 최종 승인처럼 판단이 필요한 지점에는 사람의 검토 과정을 둔다.
반복되는 수정과 오류는 다음 작업의 인풋과 검수 기준에 반영한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툴을 얼마나 많이 사용하는지가 아니라, AI가 실제 업무 흐름 안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하도록 사람과 AI의 역할을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것이다.
AI가 생산의 속도를 높일수록 집중해야 할 것

AI를 통해 확보한 시간은 그저 더 많은 결과물을 만드는 데만 사용할 필요가 없다.
그 시간은 타깃의 깊은 욕구를 살피고, 브랜드가 오랫동안 지켜온 가치를 탐구하며, 클라이언트가 실제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데 쓰여야 한다. AI가 대신하기 어려운 맥락과 관계, 판단의 영역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다.
AI가 제안한 자료와 아이디어를 그대로 전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하나의 방향을 선택하고, “그러니까, 우리는 이렇게 가야 합니다.”라고 기획자의 언어로 제안하고 설득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다.
AI가 생산의 속도를 높일수록 기획자는 더 많은 결과물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내보낼지 결정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AI가 가능성의 범위를 넓힌다면, 그 가능성이 가야 할 방향을 정하는 것은 여전히 기획자의 몫이다. 이것이 AI 시대에 우리가 기획을 대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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