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4. 30. 09:41ㆍINSIGHT
생성형 AI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영역 침투 속도는 예상을 넘어섰습니다. 카피 초안 작성, 이미지와 영상 제작, 미디어 바잉 최적화, 캠페인 리포트 자동 생성에 이르기까지 과거 수일이 걸리던 실무가 수 시간으로 단축되고 있습니다. 비용 구조와 업무 속도의 변화는 명확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시는 광고주께서도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이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얼마나, 어디에 필요한가."
이 질문은 단순한 인력 운영의 문제가 아닙니다. 광고주께서 어떤 의사결정을 AI에게 위임하시고 어떤 의사결정을 사람에게 남겨두실 것인가를 가르는, 향후 수 년간 지속될 구조적 과제입니다.
본 글에서는 AI가 기능적으로 구조적인 한계를 보이는 세 가지 영역을 짚고, 광고주께서 의사결정에 참고하실 수 있는 기준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세 영역은 각 영역의 정의와 함께, 피알원이 실제로 수행한 캠페인 사례를 기반으로 설명드립니다.

영역 1 : 고맥락을 기반으로 한 이슈 정의 (High-Context Problem Definition)
AI는 주어진 정보 안에서 답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드러나 있지 않은 맥락을 읽어내는 일에는 구조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출발점은 '광고주께서 지금 풀어야 할 진짜 문제가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작업이며, 이 단계의 품질이 이후 전략과 실행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그리고 이 작업에 필요한 정보의 상당 부분은 디지털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광고주 내부 의사결정 구조, 경영진의 관심사, 사업부 간 이해관계, 경쟁사의 비공식적인 움직임, 업계 내에서 오가는 논의, 타깃의 내재된 정서. 이러한 정보는 검색이나 데이터 학습으로도 확보되지 않으며, 오랜 파트너십과 업계 내 교류, 대면 미팅에서의 미묘한 신호를 통해서만 파악되는 고맥락(High-Context) 정보들입니다. AI는 이러한 정보에 접근할 수 없고, 따라서 이슈를 정의하는 작업은 사람의 몫으로 남습니다. 같은 브리프를 받고도 어떤 에이전시는 표면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 그치고, 어떤 에이전시는 광고주께서 말로 꺼내지 않으신 진짜 과제를 짚어내는 차이가 바로 여기서 발생합니다.
2024~2025년 진행된 인천국제공항 브랜드 캠페인은 이슈 정의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발주처는 제2여객터미널 확장 개장, 인스파이어 리조트를 비롯한 복합 시설의 개장, 세계 최고 수준의 입출국 시스템 구축이라는 여러 성과를 동시에 알리고자 했습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빠른 공항'과 '복합문화단지'라는 두 메시지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것인가의 문제로 정리될 수 있는 브리프였습니다.
피알원은 이 브리프를 다른 각도에서 접근했습니다. 현재까지의 커뮤니케이션과 타깃 인식을 분석한 결과, 인천공항은 여전히 '편의성 중심의 통과 공간'으로 인지되고 있었고, 아무리 새로운 시설과 빠른 시스템을 강조해도 기존 프레임 안에서는 '조금 더 편리해진 공항' 이상으로 확장되기 어렵다는 점이 드러났습니다. 진짜 풀어야 할 문제는 개별 성과의 전달이 아니라, 공항을 바라보는 타깃의 인식 프레임 자체를 바꾸는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슈 정의를 바탕으로, 우리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PASS(지나가는 곳)'에서 'STAY(머물고 싶은 곳)'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입출국이 빠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머무를 여유가 생기고, 그 여유를 채우는 복합문화 경험이 있다는 논리로 두 개의 메시지를 하나의 아이덴티티 아래 통합한 것입니다. 여기서 도출된 캠페인 메시지가 "놀라움에 올라타다. SURPRISING 인천국제공항"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슈 재정의는 종합광고대행사를 포함한 20여 개 경쟁사와의 프레젠테이션에서 성공적인 수주로 이어졌습니다.
영역 2 : 크리에이티브와 컨셉 설계 (Creative & Conceptual Leap)
AI는 학습된 패턴 안에서 변주하고 조합하는 데는 능하지만, 카테고리를 재정의하거나 기존 통념을 뒤집는 빅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일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캠페인의 중심 컨셉 설계, 브랜드 포지셔닝 전환, 제품 의미의 재규정은 기존 데이터의 평균이 아니라 평균에서 벗어나는 선택을 요구합니다.
실무에서 이 차이는 초안 단계부터 드러납니다. AI는 수십 개의 카피 안을 수 분 만에 생성할 수 있지만, 그중 브랜드를 실제로 다음 단계로 끌어올릴 '한 줄'은 여전히 사람이 골라내고 다듬어야 합니다. 광고주께서 캠페인에 기대하시는 차별화, 즉 경쟁 브랜드와 구별되는 독자적 입지는 이 단계에서 만들어지며, 이는 클라이언트의 장기적 비전, 사회적 맥락의 변화, 해당 영역을 둘러싼 담론의 흐름을 사람이 종합적으로 읽어낼 때 비로소 가능한 작업입니다.
넥슨의 청소년 코딩 대회 NYPC(Nexon Youth Programming Challenge) 10주년 캠페인은 컨셉 설계의 힘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광고주께서는 단순한 코딩 대회를 넘어서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는 목표를 제시하셨습니다. 피알원은 제안에 앞서 대회를 둘러싼 실제 시장 맥락을 먼저 짚어드렸습니다. 8년간 이어져 온 NYPC는 강남 8학군 학부모들 사이에서 '입상하면 서울대·연고대를 넘어 하버드·MIT·예일 진학의 등용문'으로 포지셔닝되어 왔고, 이를 겨냥한 별도의 대회 대비반 사교육까지 형성되는 예상 밖의 양상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이는 넥슨이 10여 년간 쌓아온 사회공헌 활동이 자칫 일부만을 위한 엘리트 코스로 비춰질 수 있다는 리스크였고, 10주년이라는 시점에 반드시 다뤄야 할 이슈라고 광고주께 제기했습니다.
이러한 맥락 위에서 우리는 대회의 포지셔닝 자체를 재정의하는 방향을 제안했습니다. '초엘리트 개발자를 가리는 대회'라는 기존의 프레임을 '이 시대에 필요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인재를 길러내는 장(場)'으로 이동시킨 것입니다. '엘리트가 아닌 소셜 임팩터(Social Impacter)를 위한 코딩 대회'라는 핵심 키워드는 대회의 존재 의미를 새롭게 규정했고, 10년이라는 시점에 브랜드가 가져야 할 사회적 역할을 담아냈습니다. 이 컨셉은 유튜버 미미미누와 역대 수상자들이 함께 '코딩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주제를 예능 포맷으로 풀어낸 영상(영상 보기)으로 구현되어, 코딩 대회에 대한 기존의 진지하고 폐쇄적인 이미지를 흔들고 더 넓은 타깃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례의 핵심은 단순히 '좋은 컨셉을 뽑았다'가 아닙니다. 대회가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고, 어떤 사회적 프레임 안에서 소비되고 있으며, 광고주의 원래 의도와 어떻게 어긋나 있는가를 읽어낸 뒤, 이를 바탕으로 이슈를 재정의한 것이 진짜 가치였습니다. 이러한 맥락 독해는 학습된 데이터의 평균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업계의 비공식 담론, 학부모 커뮤니티의 분위기, 사교육 시장의 움직임 같은 디지털 바깥의 정보를 종합해야 가능한 작업이며, 이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영역 3 : 관계 자산과 책임 (Relationship & Accountability)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은 단순한 콘텐츠 생산 작업이 아닙니다. 미디어 담당자, 인플루언서, 정부·규제 기관, 협력사, 때로는 소비자 커뮤니티까지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며, 이는 수 년간 쌓인 신뢰 자산 위에서 작동합니다. 단기간에 복제하거나 구매할 수 없는 자산입니다. 누구에게 먼저 연락할 수 있는가, 어떤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가, 어떤 조건을 끌어낼 수 있는가는 모두 축적된 관계에서 나옵니다.
AI는 이러한 관계의 주체가 될 수 없으며, 최상급 파트너의 섭외, 민감한 이해관계의 조정, 브랜드와 파트너 간 철학적 접점을 찾아내는 기획적 설득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집니다. 여기에 더해, 캠페인 결과와 위기 상황의 판단에 대해 책임지는 주체가 필요하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광고주께서 에이전시 또는 인하우스 담당자에게 비용을 지불하시는 본질적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책임의 소재를 확보하기 위함입니다.
윌리엄그랜트앤선즈의 싱글몰트 위스키 발베니(The Balvenie) 캠페인은 관계 자산과 기획적 설득이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발베니는 음용의 씬(Scene)을 파인다이닝 푸드페어링으로 확장하고자 했고, 이를 위해 최소 5인 이상의 최상급 셰프 섭외가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흑백요리사> 등 히어로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톱 셰프들의 출연료가 급격히 상승한 시기였고, 한정된 예산 안에서 럭셔리 브랜드에 걸맞은 라인업을 확보하는 일은 단순한 섭외 교섭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과제였습니다.
우리는 당시 국내 유일의 미쉐린 3스타 셰프였던 안성재 셰프를 메인으로 섭외하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핵심은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셰프 철학의 정교한 매칭이었습니다. 발베니가 지향하는 장인정신과 안 셰프가 지켜온 요리 철학의 접점을 찾아 유튜브 오리지널 시리즈 <궁극의 페어링(The Ultimate Pairing)>(영상 보기) 기획안을 설계했고, 이를 통해 참여를 이끌어냈습니다.
안 셰프의 합류는 연쇄적인 관계 자산 활성화로 이어졌습니다. 온지음, 부토 등 국내 최상급 파인다이닝 레스토랑과 셰프들이 협업에 동참하면서 브랜드가 목표했던 수준의 라인업이 구현되었고, 영상 라이브 시기에는 캐치테이블을 통해 해당 코스를 실제로 예약·경험할 수 있도록 1개월간 운영했습니다. 전 예약 완판이라는 결과는 마케팅 성과인 동시에, 사람 사이의 관계와 기획적 설득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습니다.
광고주의 의사결정 프레임 : 무엇을 AI에, 무엇을 사람에 맡길 것인가
세 가지 영역을 종합하면 하나의 기준이 도출됩니다.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작업은 AI에, 판단·창의·책임이 따르는 작업은 사람에 맡기는 것입니다. 카피 초안, 썸네일 이미지, 성과 리포트 1차 가공 같은 업무는 AI가 더 빠르고 저렴합니다. 반면 캠페인 집행 여부 판단, 위기 상황의 메시지 조정, 빅 아이디어 도출, 이해관계자와의 협상과 같은 업무는 사람이 쥐고 있어야 합니다.
이 기준은 인력 운영뿐 아니라 에이전시 활용 방식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AI로 대체 가능한 실행 업무를 에이전시에 맡기며 단가 경쟁을 유도하시는 방식은 앞으로 점점 효율이 떨어질 것입니다. 반대로 판단과 창의, 책임의 영역에서 에이전시와 파트너십을 구축하시는 광고주께서는 AI 시대에도 지속적인 경쟁 우위를 확보하시게 됩니다.
마무리하며
AI는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실행 단계를 빠르게 흡수해가고 있습니다. 이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며,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기회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 변화가 가리키는 진짜 방향은 "사람이 필요 없다"가 아니라 "사람이 해야 할 일의 기준이 명확해진다"입니다. 광고주께서 비용을 지불하시는 대상은 ‘노동 시간’에서 ‘의사결정의 품질’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AI 시대의 에이전시와 전문 인력의 가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재정의됩니다. 결국 질문은 '사람을 얼마나 줄일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판단을 어떤 사람에게 맡길 것인가'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 포스팅은 한대희 이사가 기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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