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는 왜 대행사를 쓰지 않았을까 — AI는 출력하지만, 서명하지 않는다

2026. 6. 23. 16:56INSIGHT

 

'AI 대전환 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질서' 현장 사진

 

5월 19일 저녁, 서강대 'AI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포럼'의 패널로 참석했습니다. 질문도, 패널들의 토론도 결국 한 자리로 모였습니다. AI가 보도자료를 쓰고, 모니터링을 하고, 경쟁사 분석까지 하는 시대에 — 광홍은 왜 필요한가.

답을 오래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루 전에, 현실이 먼저 답을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5월 18일, 스타벅스코리아의 '탱크데이' 이슈가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업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같은 질문을 받습니다. "그 정도 브랜드가 왜 대행사를 안 썼을까요?" 충분히 나올 한 질문입니다. 텀블러 판촉 같은 운영성 마케팅도 대행사가 맡는 경우 흔하니까요. 

연간 계약으로 매장과 온드채널 마케팅 전반을 파트너사에 맡기는 브랜드도 적지 않습니다. 스타벅스는 그 길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인하우스로 기획하고, 내부 결재를 거쳐 실행했습니다. 그 선택 자체를 탓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것도 하나의 경영 판단이니까요.

다만 한번쯤 되묻고 싶습니다. 대행사가 있었다면 무엇이 달랐을까요. 카피가 더 세련됐을까요, 디자인이 더 좋았을까요. 아닐 겁니다. 달라졌을 것은 하나 — 판단의 구조입니다.

조사 결과가 전하는 풍경은 이렇습니다. 이 기획은 담당자, 팀장, 담당 본부장, 대표이사까지 네 단계의 결재를 통과했습니다. 그 길에서 누구도 멈춰 서지 않았습니다. 어떤 승인자는 시안이 담긴 첨부파일을 열어보지 않았고, 법무 검토 역시 이번에는 건너뛰었습니다. 카피는 담당자의 진술 그대로, "AI에 물어봤다"고 합니다.

서명한 사람은 일곱이었지만, 판단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저는 결재 라인에 있던 사람들이 특별히 무심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쌓인 기안, 빠듯한 일정, 익숙한 포맷. "지난주에도 통과된 그 양식이네." 클릭.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어느 평범한 풍경입니다. 무서운 것은 바로 그 평범함입니다. 사고는 악의에서 오지 않았습니다. 관성에서 왔습니다.

 

대행사는 '두잉'을 팔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 업의 본질을 다시 적어두고 싶습니다. 대행사가 파는 것은 보도자료가 아닙니다. 행사 운영도 아닙니다. 그건 우리 일의 표면입니다. 클라이언트가 실제로 구매하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이 기획, 지금, 이 사회에서, 해도 될까요?"라는 질문 앞에 함께 멈춰 서는 일, 그리고 그 답에 이름을 걸어주는 일입니다.

우리는 판단이 잘못되면 계약과 평판으로 값을 치릅니다. 그래서 클라이언트의 책임은 우리와 나누는 것이기도 합니다. 대행사가 '을'이기 전에 '파트너'라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바깥에 존재하되, 결코 무책임하지 않은 시선. 이 오래된 제도가 수십 년을 살아남은 이유, 돌아보면 그것 하나였습니다.

그러니 서두의 질문에 답하자면 — 스타벅스에게 없었던 것은 대행사가 아닙니다. 첨부파일을 열어보는 사람, 정확히는 열어보고 나서 "잠깐만요"라고 말해주는 사람니다.

관성의 한복판에서 그 한마디를 꺼내는 일은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용기는 안에서보다 밖에서 내기가 조금 더 쉽습니다.

 

"AI에 물어봤다"는 말에 대하여

 

저도 매일 AI를 씁니다. 자료를 정리시키고, 초안을 다듬게 하고, 가끔은 생각이 막힌 새벽에 말을 걸기도 합니다. 부정할 마음은 없습니다. 그래서 더 담담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AI는 친절하고 빠릅니다. 그러나 자신이 내놓은 답에 끝까지 함께 있어주지는 않습니다. 고유한 상황을 입력해도 수많은 사람의 언어를 평균화한 답이 돌아오고, 듣기 아픈 말은 좀처럼 해주지 않으며, 결정적으로 — 자신의 답에 서명하지 않습니다.

"AI에 물어봤다"는 진술이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인 이유입니다. 판단을 맡겼는데, 맡은 쪽에는 책임질 능력이 없었습니다. 출력은 있고, 서명은 없었습니다.

서강대 포럼에서도 같은 결의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보도자료 초안은 AI가 쓰고 담당자는 데스킹 능력으로 평가받는 시대가 이미 와 있다는 인하우스 실무자의 증언. 에이전트끼리 정보를 주고받는 시대에는 책임의 소재부터 흐려진다는 진단. 

정보는 넘쳐나는데, 그것에 책임지는 사람은 점점 귀해집니다. 그 빈자리를 채우는 일, 신뢰를 설계하는 일이 앞으로 PR이 맡을 몫이라는 데 패널들의 마음이 모였습니다. 탱크데이는 그 자리를 비워두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준, 아마 첫 사례일 겁니다.

 

모든 위기는 저마다의 얼굴을 갖습니다

 

스타벅스 사태 이후, 타이레놀의 모범 답안을 예시로 드는 분석들을 보았습니다. 위기관리 교과서 첫 페이지 그 사례 말입니다.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타이레놀은 외부의 가해로 제품이 오염된 사건이었고, 그래서 '회사 역시 피해자'라는 서사가 성립할 수 있었습니다. 스타벅스는 다릅니다. 아직 아물지 않은 역사의 상처 위에서, 자신이 만든 콘텐츠가 문제가 됐습니다. 피해자의 자리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구조입니다. 같은 처방전을 쓸 수 없습니다.

지나간 사례를 복기하는 일은 이제 AI가 몇 초면 해냅니다. 전문가의 일은 그다음부터 시작됩니다. 이 사건이 교과서와 어디서 갈라지는지 읽어내고, 고유한 길을 찾는 일. 그래서 저는 AI 시대에 기획의 가치가 내려가는 게 아니라 올라간다고 믿습니다. AI가 미처 보지 못한 작은 흠집 하나가 기업 전체를 흔드는 일은, 앞으로 자주 찾아올 테니까요.

만약 우리 팀이 이 사건을 맡았다면, 기존 사례에서 출발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어디서 출발했을 거냐고요? 그 이야기는 — 다음 제안 자리에 저희를 불러주시면, 그곳에서 천천히 풀겠습니다.

 

대체되는 것과 남는 것

 

정직하게 인정니다. 단순한 업무는 대체될 겁니다. 우리 업의 일부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걸 부정하는 건 20년차가 할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인사이트가 있고, 신뢰가 쌓여 있고, 결과 앞에 끝까지 서 있는 사람은 쉽게 대체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일을 일답게, 일하는 삶을 사람답게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포럼의 끝도 결국 그 자리에 닿았습니다. 기계와 친구가 되는 세상일수록, 가장 인간적인 것의 값이 오른다. 박영선 전 장관은 "AI는 경험과 만날 때 극대화된다"고 했습니다. AI와 경험의 곱셈에서, AI라는 항은 이제 누구에게나 주어집니다. 값을 정하는 것은 남은 한 항 — 대체할 수 없는 경험과, 그 경험에서 우러나는 판단입니다.

저도 AI에게 위로받은 적이 있습니다. 진심으로 고마웠던 새벽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따뜻한 문장이 결국 누군가의 언어를 학습한 결과라는 데 생각이 닿으면, 마음 한이 묘하게 쓸쓸해집니다. 그 쓸쓸함이 남겨둔 자리. 그곳에 사람이, 우리가 서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언어는 빌릴 수 있습니다. 책임은 빌릴 수 없습니다.

그것이 AI 대전환 시대에 우리가 더욱 강력해질 이유입니다.

 

 

*이 포스팅은 박소연 상무 기고하였으며, 서강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대학원 제15대 총동문회 주관 「AI 대전환 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질서」 포럼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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