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관리,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2012. 9. 28. 14:11INSIGHT

 

위기관리에서 프로와 아마추어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과연 무엇일까요? 제 생각의 결론은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가입니다. 위기상황이 발생했을 때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리스트와 행동요령은 위기관리 관련 서적을 보면 다 나옵니다. 어떤 조직은 위기관리 매뉴얼을 구비하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로 잘 될까요?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제 생각을 언급하면 다소 산만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최근 발행된 <위기관리 10계명>이라는 책의 내용에 대비해서 풀어 볼까 합니다. 대체로 잘 정리된 책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다양한 위기관리 사례들을 함께 소개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위기관리가 그렇듯 클라이언트의 내밀한 내용들을 노출할 수가 없어서 아쉽습니다.

 

 

 

 

<위기관리 10계명> 책을 통해 본 위기관리 기술

이 책에서는 기업의 위기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눕니다. 재무적인 위기와 돌발사고입니다. 너무 단순해 보이는 분류이긴 하지만 기업 경영상의 모든 위기가 재무적인 위기와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동의해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위기관리를 커뮤니케이션의 과정이자 사회적 재판의 과정이라고 규정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대체로 공감합니다.

 

이 책에서는 이해 관계자들이 갖는 견해를 위기상황을 초래한 나쁜 기업이거나 운이 없어서 사고를 당한 좋은 기업의 이미지로 나누고, 위기관리는 후자로 유도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명료한 것이 마음에 듭니다.

 

하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굉장히 복잡합니다. 나쁜 기업과 좋은 기업으로 딱 나눠지지 않습니다. 나쁜 기업이어도 어느 정도 나쁘냐가 관건입니다. 그리고 좋은 기업인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의도하지 않은 사고라서 도덕성까지 침해되는 상황은 잘하면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보이는 케이스가 최상입니다. 사실관계에 억울함에도 정도가 있습니다. 오랜 사회적 관행이라고 인정해 줄 수 있는 실정법 위반인지 또는 최근 사회적 정서의 흐름이나 정치적 의도 등과 연관돼 더 몰매를 맞는지, 나만 걸려서 고생인지, 천차만별입니다. 때로는 블랙컨슈머의 해코지처럼 완전 억울해도 증명하기 난감한 사례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이든 위기관리의 첫 단추는 현재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대부분 위기관리 전문가라고 하는 이들이 그렇듯, 이 책에서도 기업은 위기가 닥쳤을 때 두려워 말고 오히려 기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기회로 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희망적인 얘깁니다. 하지만 너무 낙관적입니다. 이렇게 되는 경우는 정말 드문 케이스입니다. 기업의 이미지와는 상관없이 인지도만 올라가면 사업이 잘되는 일종의 사행성 사업 같은 경우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죠. 그래도 현실에서는 그런 업체가 잘 살아남지 못합니다. 사업이 취소되거나 대표가 구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유일한 경우는 위기상황에 처했던 기업이 완전히 오해가 풀리고, 사람들이 그간의 피해에 대해 진심으로 동정을 해주는 상황에서 부수적으로 인지도도 올라간 상황입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

 

이 책에서는 위기 발생 첫 24시간이 승패를 좌우한다고 합니다. 초두효과(Primary Effect)라 하고, 이때 어떻게 인식되는가와 어떠한 조치를 취하는가가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대목입니다. 다음과 같은 조치들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1) 피해자 구제와 피해 확산의 방지

2) 답변의 단일화와 내부 단속

3) 대변인 선정

4) 공식적인 첫 입장 표명

5) 추가적인 조치(CEO의 현장방문 및 기자회견, 사과광고 및 성명 등)

 

그런데 24시간 이내에 위의 조치들을 모두 할 수 있는 조직은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물론 책의 저자도 이러한 조치들을 최대한 신속히 체계적으로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1),2),3)의 조치를 제외하고 4),5)의 조치가 설혹 가능하다고 해서 24시간 이내에 하는 것이 좋은지는 의문입니다. 사태의 정확한 분석과 향후 추이를 제대로 판단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서둘러 공식입장을 발표하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위기상황에서 CEO가 움직일 때는 심사숙고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모두 정확한 판단에 근거해야 합니다.

 

이 책에서는 초동 조치 이후에는 위기관리의 7가지 요소(TASCINE)에 따라 체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합니다.

 

1) 위기관리팀(Team)

2) 행동(Action)

3) 사실관계 구성(Story)

4) 소통(Communication)

5) 정보수집(Intelligence)

6) 협상(Negotiation)

7) 마무리(Ending)

 

위기관리 상황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다소 겉멋이 들어있는 표현이긴 하지만 말이죠.

 

또한 이 책에서는 위기관리 10계명을 기술해 놓았습니다.

 

1) 위기는 사회가 당신 회사를 심판하는 재판의 과정이다

2) 처음 24시간이 전부다

3) 위기관리팀을 미리 구성해둬라

4) 내부 직원을 최우선적으로 보살피고 활용하라

5) 스토리를 정교하게 구성하라

6) 스토리와 시스템으로 커뮤니케이션하라

7) 언론을 피하지 말고 언론의 속성을 파악해 적극적으로 대응하라

8) 절대 거짓말은 하지 마라

9) 고위 임원들에 대한 형사처벌을 최대한 막아라

10) 끝맺음을 잘하라 

 

고전적인 내용들이지만 항상 유념해야 할 사항들입니다. ‘처음 24시간이 전부다라는 항목을 빼면 절대 공감합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10계명은 실전에서는 체크리스트로서의 효용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세부적으로 이를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경험과 판단이 우선입니다.

 

 

위기상황에는 PR전문가의 정확한 판단이 중요합니다

전체적으로 독후감처럼 장황하게 늘어놓아서 주장하고 싶은 게 뭐냐는 비난이 있을 듯합니다. 요지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위기관리에서는 정확한 판단이 가장 중요합니다.

 

1) 어떠한 위기상황인지?

2) 위기상황이 왜 발생했는지?

3) 이해관계자들은 어떻게 얽혀 있는지?

4) 현재 위기상황이 어느 정도 파급력을 가질 것인지?

5)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돼 나갈 것인지?

6) 현재 고려하지 못한 다른 변수(정치/사회/문화적 변수, 돌발 상황)는 없을지?

7) 수습하려는 방향과 조치가 과연 적절할지?

8) 피해가 불가피하다면 위기관리 목표를 어느 선으로 정할지?

9)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할 사항은 무엇인지?

10) 경영진 또는 실무진에서 다양한 의견을 내놓을 때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11) 공식입장 및 답변의 내용과 톤앤매너(Tone&Manner), 단어 선택은 적절한지?

12) 최초 예상과 어긋나는 상황이 발행했을 때 전략을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 등등

 

판단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것들을 위기상황에서는 정확하고 빠르게 판단해야 합니다. 하지 않느니만 못한 조치 때문에 낭패를 보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둘째, 정확한 판단은 결국 전문가의 몫입니다.

위기관리팀은 PR전문가, 법률전문가, 내부전문가(회사를 가장 잘 알고 있으면서 일정 부분 의사결정 권한을 위임 받은 고위층 인사)로 구성되는 것이 최상입니다. 이렇게 구성해야 하는 이유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합니다. 위기관리 의사결정에는 모든 정보의 개방과 함께 팀 내의 소통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PR전문가가 키 역할을 해야 합니다. PR전문가가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우리 사회에서 어떠한 Input이 복잡한 변수들을 거친 후에 어떠한 Output이 되어 돌아올까를 경험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것이 핵심적인 능력입니다. 위기상황에서는 해당 조직의 분위기와 논리에 몰입되지 않고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통찰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PR전문가가 실수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위기관리 매뉴얼보다는 사람의 경험이 항상 더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간단한 매뉴얼은 현실적으로 다양한 변수들을 제대로 고려할 수 없고, 복잡하고 두꺼운 매뉴얼은 그 내용을 제대로 숙지하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반면에 공장에서 오랜 경험을 통해 구성원들이 함께 다듬어 온 작업 매뉴얼이나 안전사고와 관련된 예방차원의 매뉴얼 등은 정말 유용한 자산입니다. 위기관리 매뉴얼이 그와 같을 순 없습니다. 그렇지만 급박한 상황에서 우왕좌왕하지 않게끔 기준을 잡아줄 수는 있겠죠. 잘 만들어진 매뉴얼이라면 말입니다. 하지만 매뉴얼만으로는 분명히 부족합니다. 매뉴얼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으면서, 돌발상황에도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경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위기관리의 본질은 소통입니다

끝으로 <위기관리 10계명>에 나와 있는 내용 중 멋진 표현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위기는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한 편의 드라마다. 위기가 시작되는 순간 그 기업은 무대위로 올라간다. 사회라는 관객은 드라마가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각기 나름대로 평가와 심판을 내린다. 이 평가와 심판을 통해서 회사와 사회의 관계가 재편(Repositioning)된다. 위기는 사회와의 관계를 다시 맺는 기회다.’

저도 이런 식으로 멋들어지게 말하고 싶은데 왜 잘 안 될까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서 위기관리의 본질은 사람과의 소통이라고 간명하게 정의한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듭니다. 그리고 위기관리는 객관적인 시각을 가진 소통의 전문가가 가장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이 글은 홍보회사 피알원 이백수(opqr@prone.co.kr) 공동 대표이사가 기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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