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알촌 남자들의수다 "홍보대행사 남자들이 사는 법"

2011. 11. 29. 11:14LIFE

서대문에 위치한 피알촌’. PR이란 분야에서 좀 한다면 하는남녀가 어울어져 살아가는 이 곳의 한 회의실로 오늘 다섯 명의 남자들이 하나 둘, 모이고 있다. 모이는 목적도 모르고, ‘애정촌을 상상한 이들은 여자 멤버들이 하나도 없이 우중충한 회의실로 들어오며 실망한 기색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뿔테 안경의 개성 강한 남자, 샤프한 옷깃의 섬세한 남자모두 모습부터 심상치 않아 보인다. 이들은 모두 제 분야에서 꽤나 명성을 날리고 있는 피알원의 각 직급을 대표하는 남자들이다.

그러나, 세상의 잣대가 되었던 나이와 출신, 직급은 잠시 비껴두기로 하자. 이제 그들은 자신의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리우게 된다. ‘훈남과장님도 아니다. 오늘은 그냥 남자1, 2호일 뿐이다.

이제 그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 보자.


 

동그랗고 좋아 보이는 얼굴이 인상적인 남자 1호가 사회자를 자청하고 나섰다.

남자 1

남자들끼리 오랜만에 모인 것 같다. 간단하게 자기 소개 먼저 부탁한다. 먼저 나부터 이야기 하면, 난 피알촌에 들어온지 벌써 10년이 되었다. 그 사이 AE에서 팀장을 거쳐 이제는 본부장으로 일하고 있고, 집에는 이 전에 없던 세 명의 여자들이 생겨
함께 살고 있다
.

 남자 2

저는 인 하우스에 있다가 피알촌으로 온 지 2년이 되었다. 피알촌에 있으며 결혼도 하게 되었고, 위로는 선배들, 아래로 후배들을 비슷하게 두고 있는 중간위치로 어찌보면 가장 객관적일 수 있다.

남자 3

피알촌 2년차로 이 전에도 피알촌과 같은 대행사에서 일을 했다. 타 대행사에서도 일해 봐서 이 분야의 돌아가는 상황은 잘 알고 있다. 이제 나도 결혼적령기에 접어들어 피알촌안 밖에서 좋은 여자를 물색 중이다.

남자 4

저는 피알촌 공채로 입사해 이제 곧 1년이 됩니다. 1년간 다른 어느 곳에서 배우지 못할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남자 5

대학에서 국문과 졸업하고 갓 입사한 막둥이 인턴입니다. 선배들의 많은 관심이 때로는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큰 힘이 되어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습니다.



 
홍일점은 사랑 받지만,

                                 청일점은 괴롭다......


오늘 이야기 주제는 <홍보대행사에서 남자란?>이다. 피알촌에서 남자로 살기란 어떨까?

# 오랫동안 기다려왔다는 듯 남자 2호가 재빠르게 말문을 열었다.

남자 2 : 사실 홍보대행사가 여자 비율이 이렇게 높은 곳인 줄 몰랐다. 와서 보고 놀랬을 정도니까
남자 1 : 꽃밭이어서 좋았다는 의미인가?
남자 2 : 처음엔 그랬는데지금은 솔직히 깝깝하다는 생각도 들 때가 많다. 전에 있던 회사는 대부분이 남자여서 퇴근 후 술 한 잔 한다거나, 담배 한 대 피러 갈 때도 소소한 낙이 있었다. 그런데 여기엔 남자 동료가 많지 않다보니 보니 남자로서 술을 권한다던가, 유부남으로 결혼생활을 얘기한다던지 편하게 얘기 할 사람이 없는 게 제일 아쉽다. 또 무슨 일이 있으면 남자들은 술 마시고 풀면 됐는데 여직원들과는 한 번 실타래가 꼬이면 풀기가 어렵다. 섬세해서 그런지 마음의 잔상이 오래가는 것 같다.

# 막혔던 물고가 터지듯, 다섯명의 남자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 간의 경험을 쏟아낸다.
 

남자 4 : 저는때로는 사내에서 남자직원을 힘 좋은 머슴?’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전원 끄덕) 여자들이 많은 회사에서 당연한 일이라 여겨지지만, 때로는 여자들도 충분히 할 수 있을 정도의 일인데, 팔의 힘 좀 들어가야 하는 일이면 여기저기서 부를 때, 솔직히 그런 생각이 들긴 한다.
남자 2 : 제일 억울 한 건 기자와의 저녁미팅에서 내가 다 흙기사 해줬는데 다음 날 힘들어하면 약한 남자로 낙인 찍히는 경우이다. 남자라고 천하무적이 아닌데여직원은 아프다고 하면 위로를 받는데, 남자가 아프다고 하면 약하거나 일하기 싫어 꾀 부리는 정도로 취급 받는다.
남자 4 : 근데 가만히 보면 술 자리에 살아 남는 건 여자다!! ‘피알촌만 봐도 같이 술마시고 더 쌩쌩한 여자들도 많다. 남자는 힘들지 않을 것이란 생각은 편견이다.
남자 3 : 체력 뿐 아니고 남자는 속도 넓어야 한다. 뭐든 이해해야 하고, 힘든 내색도 하면 안되고안 그럼 바로 속 좁은 사람이 된다. 여자가 반드시 여성스러울 필요가 없듯 남자도 마찬가지이고 때로는 삐지기도 하는데 이를 내색하는 것은 여자들이 많은 회사에서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남자 2 : 맞다. 그렇게 한 번 낙인 찍히면 그건 자살행위란 것을 우리 모두는 배우지 않아도 알고 있다. ‘피알촌은 굉장히 소문이 빠른 곳이니까. 남자로서 약해 보이는 행동을 한 후, 옆에 있는 여직원들이 서로 메신저를 하는 모습을 보면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여겨져 너무 공포스럽다. ㅋㅋ

 

나는 변하고 있다.. 고로 나는 남자다.

# 피알촌엔 강제도 지시도 없다
                                그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자연스레 늘어놓기 시작했다.
남자 1 : 여자들 사이에 있으니까 성향이 바뀌거나, 기타 스스로의 변화는 없나?
남자 3 : 나는 많이 달라진 편이다. 예전에는 TV프로그램 같은 거에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지금은 드라마, 연예 가십, 패션 등 예전보다 더 다양한 분야, 여자들이 좋아하는 분야에 관심이 간다. 이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 덕에 다양한 분야로 지식이 넓혀지고, 어디에 가나 대화에 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장점도 있다.
남자 4 : 사실 남자와 여자는 대화의 소재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남자들은 스포츠, 자동차, 군대 얘기가 주를 이루지만, 여자들에겐 온갖 다양한 주제가 있다. 우리 팀의 경우 업무의 특성상 패션에 대해 많이 얘기하는데 내가 피알촌 오기 전에 인터넷 쇼핑몰을 해서 다행이 패션용어에 익숙한 편이다. 그래서 중간 중간 전문용어를 던질 때면 반응이 매우 좋고, 그것이 내 인기비결이다. (하하~)
남자 2 : 반대로 그런 의미에서 서로 배려가 필요할 듯 하다. 소위 남자들이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를 하면 여자들이 지루해 한다고 한다. 남자도 마찬가지다. 여성들이 많은 회사에서 남자들은 늘 외롭다. 같이 대화를 할 때에도 이런 배려가 있으면 좋겠네요.
남자 1 : 그럼 이런 질문은 어떨지 모르겠는데본인이 팀장이거나 같이 일할 사람을 선택할 권한이 있다면, 남자 후배와 여자 후배 중 누굴 선택하겠느냐?
# 어떤 질문에 이렇게 망설임이 없을 수 있을까.

남자 2 : 남자
남자 3, 4, 5 : 저도 남자
남자 3 : 어떤 상황이 생기면 남자 후배에게는 이 정도는 괜찮겠지. 알아서 하겠지?’라고 생각하는 반면 여자에게는 상처 받지 않을까?’가 먼저 떠오른다.
남자 2 : 일을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를 떠나, 사람이기에 1차적으로 함께 하기 편한 사람을 선호하게 된다. 비효율적인 고민까지 해야 하는 것은 스트레스로 다가올 때가 많다.
남자 1 : 맞다. 난 지금도 본부 내에 전원 여자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어 누구보다 이런 부분을 많이 느낀다. 여자들이 많은 환경에서 일을 할 때는, 그렇지 않을 때보다 한 번 더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하긴 하다. 누가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나랑은 다른 성, 다른 별에서 온 사람들이기에 분명 더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있다.
남자 4 : 분명 같은 조직에서 생활하지만, 여성들의 복잡한 심리상태까지도 감안해야 한다는 거 중요하다. 그러나 반대로 여자들도 남자상사, 남자후배를 대할 때는 이러한 다름을 이해해 다른 행동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생각된다.


 디테일의 끝, 여자에게서 배운다.
남자 1 : 그럼 반대로 여자랑 함께 일함으로 얻는 장점은 없나?
남자 2 : 홍보업무의 특성상 생각하는 것을 글로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이건 여자들이 탁월하다. 아니 우월 할 정도다.
남자 3 : 클라이언트 컨트롤 능력이 부럽다. 남자들은 욱하는 성격이 조금씩은 있어서 상대가 억지를 부리면 감정이 먼저 앞서 확 들이받는마음이 앞서는데, 여자들은 한 박자 쉬고 여유롭게 말하는 걸 보면, 본 받고 싶을 따름이다.
남자 4 : 난 디테일경험에서 오는 것도 있겠지만 남자로선 상상도 못 할 것들을 챙기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 밖에 안 든다. 그럴 땐 과연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남자 1 : 동감한다. 홍보대행사의 특성상 꼼꼼함, 세세함이 반드시 필요한데 내가 채우지 못하는 부분에 있어서 함께 일하는 여성들은 늘 든든한 백업이 되어준다.
남자 3: 여자가 많다 보니 소개팅 주선이 끊이지 않는 것도 좋다. ㅋㅋ
# 많은 여자들 사이에서 독특한 희로애락을 경험하고 있지만, 실은 이곳에 오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한 사람들이다. 꿈을 이룬 지금, 그들이 생각하는 피알촌은 어떤 모습일까?

그렇다면
, 피알촌에 남자로서의 비전은 없는 것일까?
남자 1 : 얘기를 들어보니 애환이 많은 것 같다. 그렇다면 피알촌안에서 남자의 경쟁력은 뭘까?
남자 2 : 커뮤니케이션인 것 같다. 업종의 특성상 PT 등 외부인과 대화 또는 설득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목소리가 묵직해서 그런지 상대에게 무게감이나 신뢰성을 더 주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
남자 3 : 여자에 비해 이직 및 퇴직이 덜 하다는 장점도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군대를 다녀와서 그런지 개인적인 목표보다는 조직의 목표를 우선 시 생각하는 것은 남자들의 특성이자, 강점이다. 이직률이 높다고 하는 대행사에서 남자들의 이직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도 이러한 이유와 무관하지 않은 듯 하다.
남자 5 : 여자가 많은 분야라고 해서 남자가 불리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건 개인의 경쟁력인 것 같고. 오히려 멀게 볼 때 남자 직원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는 분야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남자 3 : 나 역시 남자라는 것이 강점이라 생각한다. 기존 여자들이 많았던 분야에 있어 남자로서의 장점이 더해지는 것은 조화라는 점에서 회사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소위 말해 남자로서의 희소성이 더 먹힐 것같다.
# 남자 1호가 마지막으로 홍보인을 꿈꾸는 남성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물어 봤다. 은근 이 글을 읽을 예비 남자 홍보맨들을 염두한, 속일 수 없는 직업병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피알촌에 자리 잡고 싶어하는 남자들에게 한 마디!!
남자
1 : 마지막으로 홍보인을 꿈꾸는 남성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남자 3 : 피알촌에서 일한다는 것은 단순한 월급쟁이가 아닌, 여러 분야를 두루 볼 수 있는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기회이다. 다른 어떤 분야보다 다양한 경험을 하며 시야를 넓힐 수 있는 분야가 아닌가 생각 든다.
남자 2 : 단도직입적으로 남자의 날을 세우려면 홍보 대행사를 와라!!’ 이 곳에선 마케팅과 홍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부서가 엄격히 나눠져 있는 대기업과 달리 홍보대행사는 마케팅과 홍보, 나아가 광고까지 다양한 능력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거기에 예전과 달리 규모면에서나 인지도면에서도 안정화되었으니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직장이다.
남자 5 : 입사한지 1개월. 거품 인기를 더 느끼기 위해, 제 밑으로 남자는 당분간 안 왔음 좋겠고…(하하~) 전문가가 되겠다는 마인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자가 장점이 많은 분야이기 때문에, 남자로서 살아남기 위해선 확고한 마인드가 중요하다.
남자 4 : 대기업 간 친구들이 많다. 기계 부속품처럼 사는 것 보단, 어느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서, ‘아 이럴 땐 누가 필요하다라는 포지셔닝이 되고 싶어 이 곳 피알촌으로 오게 되었다. 특히 인문계 학과를 나온 남자로서 이러한 전문성을 구축하기 힘든데, 1년 이라는 짧은 경험이지만 홍보라는 분야는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된다.
남자 1 : 내 주변도 그렇다. 대기업, 은행, 언론사 등을 간 친구들이 많다. 상대적으로 처음 시작을 할 때는 뭔가 좀 아쉬운 부분이 있었는데, 지난 지금 와서 보면, 내가 더 경쟁력이 생긴 것 같다. 친구들은 시작할 때 보다 가능성이나 경험이 매우 좁아진거 같지만, 나는 그 반대이다. 커뮤니케이션, 현장경험, 광활한 인맥은퇴 후에도 할 수 있는, 갈 수 있는 곳이 많을 것 같다. 그런 면에 있어선 멀리 봤을 때도 이 분야는 남자로서 꽤 괜찮은 직업이다.
# 피알촌에 어김 없이 점심시간이 돌아 왔다. 한 시간의 짧은 이야기를 마치고, 남자들은 각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문 밖을 나가자마자 여기저기서 그들을 찾는 소리가 들린다. “과장님 여기 박스 좀 올려주세요!!”

그렇다, 현실의 시계는 멈추지 않고 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