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월 후기] 관광과 휴양 사이 그 어딘가

2020. 3. 20. 10:21LIFE

'과연 그날이 올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지만
언제나 그랬듯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어느덧 '그 날'이 저에게 선물처럼 다가왔습니다.
피알원에서 3년 근무하면 주어지는 한 달의 안식휴가는 리프레시가 필요한 피알워너들을 위한 복지 혜택입니다.

 

귀하디 귀한 한 달의 시간 동안 저는 두 번의 여행을 했는데, 한 번은 포르투갈과 스페인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떠난 여행, 다른 한 번은 발리로 혼자 떠난 여행이었습니다.
안식월을 다녀오고 벌써 2개월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때의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안식월 후기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가족여행 #철저한계획 #엄빠의첫유럽

제 모든 여행은 잘 짜인 일정표에서 시작됩니다. 즉흥적인 것보다는 정해놓은 일정대로 움직이는 편이에요. 특히 이번 여행은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첫 해외였기에 시간적, 체력적 소모를 하고 싶지 않아서 두 배 세 배 더 꼼꼼하게 짜게 되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부모님을 모시고 해외여행을 가고 싶어 3년 전 오빠와 함께 적금 통장을 만들었고 만기일을 채운 작년 겨울, 우리 네 가족은 리스본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호카곶: 여기서 육지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
리스본에서 40분 정도 차를 타고 이동하면 유럽의 최서단 호카곶에 갈 수 있습니다.
눈 앞에는 광활하게 펼쳐진 대서양이, 그리고 발 아래로는 아찔한 절벽에 파도가 부서지는 곳.
언뜻 제주도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눈 앞에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대서양임을 새삼 깨닫는 순간 내가 대륙의 끝에 와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됩니다.
일몰 시간에 맞춰 가면 대서양 너머로 떨어지는 해를 보며 하루의 끝을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 그 시간대에 방문하는 것을 추천드릴게요.

 

 

#포르투: 빈티지한 매력의 일몰맛집
포르투갈 제2의 도시라고 불리는 포르투는 리스본과 마찬가지로 항구도시입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실수를 한 게 있다면 포르투에 가장 짧게 머물렀다는 점일 거예요. 포르투라는 빈티지한 도시의 매력에 빠지는 시간은 단 하루로 충분했지만 그 매력을 온전히 다 느끼기에는 너무도 부족한 시간이었습니다.
일몰을 보기 위해 동 루이스 다리를 건너 모로공원에 도착했고, 그곳에 걸터앉아 내려다 본 포르투의 풍광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지는 해는 붉은 지붕들을 점점 더 붉게 물들여갔고, 도루강은 노을빛에 반짝였습니다. 저는 그 광경을 바라보는 사람들 모두가 분명 행복을 느끼고 있을 거라고 확신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몬세라트: 자연이 빚은 아름다운 건축
이제 포르투에서 비행기를 타고 1시간 반을 날아 바르셀로나로 갑니다.
바르셀로나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몬세라트에 가기 위해 아침 일찍 투어에 나섰는데, 몬세라트는 해발 1236m의 산으로 6만여 개의 봉우리로 되어 있고 '톱니 모양의 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산 중턱에는 세계 4대 성지로 알려진 수도원이 있고 이곳에는 유명한 검은 성모 마리아 상 '라 모레네타'가 있어 이 성모상에 소원을 빌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수도원을 나와 푸니쿨라를 타고 가파른 경사를 올라가면 기암괴석과 깊은 협곡이 펼쳐진 자연의 웅장함 속에서 트래킹 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곳은 가우디가 종교적, 건축적으로 많은 영감을 받은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가우디의 건축물을 보기 위해 바르셀로나에 간다면, 그가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와서 자연 속에서 해결책을 찾았다던 이 곳, 몬세라트에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가장 완벽한 계획이 뭔지 알아? 무계획이야."
#나홀로여행 #무계획 #훈련과휴양사이

빡빡한 일정의 유럽 여행을 마치고 떠난 여행이었기에 혼자 떠나는 무계획 여행은 생각보다 더 달콤했습니다.
사실 아무 계획이 없진 않았습니다. 제가 발리로 ‘혼여’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프리다이빙을 하러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정해놓은 목표라곤 오로지 그것 하나였기 때문에 그 외 다른 일정은 모두 비워둔 채로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아메드: 프리다이빙 자격증을 따자
발리는 휴양의 탈을 쓴 훈련 테마의 여행이었습니다. 단순히 펀다이빙을 하러 간 것이 아니라 프리다이빙 자격증 획득을 위한 여행이었기 때문인데요. 프리다이빙이 생소한 분들을 위한 설명을 붙이자면, 프리다이빙이란 공기통 없이 무호흡으로 잠수하는 스포츠를 말합니다.
프리다이빙은 3년 전 피알원 동호회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동호회 활동이 끝난 후에도 지금까지 해올 수 있었던 건 그만큼 매력적인 스포츠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숨을 쉬고 싶은 충동을 이기고 스스로를 컨트롤할 수 있게 만들고 싶은 욕구와 그 한계에 도전하는 기분들이, 물 속에서 아득해지는 소음들과 그 안에서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순간들이, 그리고 바닷속 아름다운 그림과 그 속에 내가 함께 녹아지는 것 같은 느낌들이 프리다이빙을 계속하고 싶게 만든 이유인 것 같습니다.
당시 동호회에서 강의해 주신 강사님과의 인연이 지금까지 닿아, 그렇게 저는 강사님이 있는 발리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발리 공항에 도착해 아메드라는 지역으로 갑니다. 아메드는 발리에서도 관광지로 꼽히는 지역이 아니고 오직 다이빙을 하러 오는 다이버들만 모이는 시골 마을이기에 발리 하면 흔히들 떠올리는 로맨틱 신혼여행지, 럭셔리 풀빌라, 플로팅 조식과 같은 근사한 것들은 없었지만, 맑은 날에는 구름 사이로 솟아있는 아궁산을 볼 수 있었고, 바다 입수 전에 건승을 빌어주는 많은 다이버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번 안식월을 기회로 한 단계 더 레벨업하는 자격증에 도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수준에서는 어려운 도전 과제였기 때문에 자격증을 딸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지는 않고 그저 도전하는 데 의의를 두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모든 테스트를 간신히 완수하고 자격증 획득에 성공을 했습니다.(환호)

 

 

#우붓: 논두렁에서 1일 1요가
발리에 온 목표가 달성되었기 때문에 남은 시간 동안은 여유롭게 휴양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우붓에 가면 논두렁에서 요가를 할 수 있다는 말에 아메드에서 차로 3시간을 달려 우붓으로 향하게 됩니다. 여러 요가원들을 찾아보고 3군데를 정해서 우붓에 머무르는 3일 동안 1일 1요가를 실천했는데, 그 중 가장 추천해드리고 싶은 곳은 '우붓 요가하우스'입니다.
오토바이 소리와 매연으로 가득한 메인 스트리트에서 벗어나 골목으로 들어가다 보면, 마치 다른 세계인 듯한 초록빛 논두렁 세상이 펼쳐집니다. 이 요가원은 그 외지고 고요한 자연 속에 위치해 있었고 사방이 뚫려 시원한 바람이 부는 원두막 같은 공간에서 클래스는 진행되었습니다.


명상할 때 오직 새소리, 물소리, 바람에 부딪히는 풀잎소리와 나긋하게 읊조리는 선생님의 말씀만이 공기 중에 떠다녔고, 가만히 눈을 감으면 아무도 없는 숲 속에 혼자 남아있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인생 최고점을 찍은 힐링 요가를 끝내고 조금 더 걸어서 만난 논뷰의 한 카페에서 시원한 맥주를 받아 들었을 때는 '내가 이 순간을 위해 우붓에 왔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습니다.
 

 

 

 

쉼 없이 굴러가던 쳇바퀴 같은 삶에서 한 달의 휴가가 생긴다는 것,
어쩌면 직장인들한테는 그저 허황된 단꿈이라고만 생각될 수 있죠.
그런 단꿈을 현실로 이룰 수 있도록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업무 공백 없이 잘 채워준 DCS 팀원들과 팀장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선뜻 어딘가로 떠나기 힘든 지금 같은 시기에, 피알워너들의 여행욕을 간접적으로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됐길 바라며 저의 안식월 후기를 마칩니다.


모두가 바라보고 있을 '그 날'을 응원하며!

 

 

 

※ 이 글은 DCS 한지민 과장이 기고했습니다.

 

 

 

Tag :기업문화, 사내 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