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 담당자에게 필요한, 순진함과 교만함 사이에서의 지혜

2012. 11. 2. 10:06INSIGHT

 

 

얼마 전 한 협회의 초청으로 예비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간단한 강연회에 참석했습니다. 참석자들의 관심은 그들이 장차 상대해야 할 기업의 홍보팀은 어떠한 일을 하는 조직이며, 홍보 담당자는 어떠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가에 있었습니다.

 

제가 홍보 담당자의 주요한 덕목은 기자들과의 관계에서 신뢰관계를 유지하는 것임을 강조하는 대목에서 한 참석자가 질문을 했습니다. “홍보 담당자들은 기자로부터 외부에 밝힐 수 없는 사실의 공개를 요청 받았을 때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제 경험에 비춰볼 때 홍보 담당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수시로 접합니다. 쉽게는 “모른다”며 모르쇠로 응대할 수도 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특히 요즘처럼 정보가 빠르게 공유되는 홍보 환경 속에서 섣부른 모르쇠 대응은 홍보 담당자의 역할과 능력에 관한 신뢰를 크게 의심받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홍보 담당자가 기업 입장에서 사실 확인을 보류하고 있는 사항을 곧이곧대로 언론에 확인해 주기에는 부담이 있습니다. 홍보 담당자의 역할은 기자처럼 공중에 정확한 정보를 공개하는 데 있기보다는 기업 이미지를 관리하는 데에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참석자들에게 독일의 철학자인 칸트 교수의 <순수이성비판> 후문에 나오는 일화를 소개하며 홍보 담당자들이 갖춰야 할 지혜와 순발력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칸트 교수는 그의 저서 <순수이성비판>을 통해 인간은 스스로의 영혼의 자유를 위해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사실 칸트 교수는 스스로 그렇게 살았을 것으로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짓궂은 제자가 질문을 합니다. “교수님, 선의의 거짓말이 필요한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만약 폭력배에 쫓겨 집으로 뛰어들어온 소녀가 있습니다. 잠시 후 폭력배가 현관문을 두드리며 소녀를 찾는 상황에 접한다면 교수님께서는 그러한 상황에서도 선의의 거짓말을 하지 않으실 수 있겠습니까?

 

이에 대해서도 칸트는 “그래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얘기합니다. 칸트는 그러한 상황에서도 거짓말을 하지 않고서도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암시적 행동’ 같은 것으로 거짓말을 하지 않고도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집 주인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는 뒷문을 잠시 응시한다든지, 뒷마당 저 편에 흔들리고 있는 나무를 응시하거나 화제로 삼음으로써 폭력배에게 ‘저 쪽으로 소녀가 도망갔구나!”하는 의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해도 칸트식 처방은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다소 억지가 있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트의 이러한 일화는 신뢰를 잃지 않으면서도 사실을 얘기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홍보 담당자들에게 잔잔한 교훈을 남깁니다.

 

그래서 홍보 담당자들은 지혜와 순발력을 중요한 덕목으로 꼽는 모양입니다.

 

제가 대우그룹 홍보실에서 근무하던 시절에 있었던 일화입니다. 당시 연합통신의 한 기자로부터 그룹사의 해외법인 매출 실적 추이에 관한 수치자료 제공을 요청 받고 고민했던 적이 있습니다. 홍보 담당자 입장에서 수치자료를 언론에 내보내는 것은 대체적으로 조심스러운 일입니다. 특히나 당시 대우그룹은 ‘세계경영’이라는 슬로건 하에 활발하게 해외사업을 벌여나갔으나, 투자가 늘었던 것이지 현지법인의 매출 실적이 따라 오르지는 않던 단계였기에 해외법인 매출 실적을 내세울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실무 담당자 입장에서의 고민은 더 컸습니다.

 

이때 누군가가 번뜩이는 지혜를 발휘했습니다. ‘해외법인 매출 추이’를 제시하기보다는 ‘해외 매출 추이’를 제시하자는 아이디어였습니다. 당시 ㈜대우를 중심으로 한 대우그룹 계열사들은 해외 수출물량 실적 면에서는 업계 수위였습니다. 비록 해외법인들에서의 매출 실적은 내세울 것이 없었더라도 수출 실적을 포함한 해외매출 실적 추이는 규모도 컸을 뿐만 아니라, 매년 30% 이상 급상승하는 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연합통신 기자는 제가 제공했던 자료에 만족했으며, 멋진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기사를 기반으로 주요 언론매체들이 “대우그룹이 세계경영의 성과로 해외 매출이 급신장하고 있다”는 기사를 받아썼습니다. 이 일로 우리 홍보팀과 연합통신의 취재기자는 나름대로 각자의 조직으로부터 크게 칭찬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순진함과 교만함 사이를 지혜로움으로 채워야 한다는 재미있는 얘기 한 토막을 소개합니다.

 

옛날에 한 폭군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외눈박이에다가 한쪽 발이 없는 절름발이였고, 사람의 목숨을 파리목숨보다도 경시하는 포악한 성격을 지녔다고 합니다. 한 번은 그 폭군이 화가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도록 명령했답니다.

 

첫 번째 화가는 순진했지요. 정말 있는 그대로 사실처럼 폭군의 초상화를 그렸고, 외눈박이에다 한쪽 발이 없는 자신의 초상화를 보고 격노한 왕은 "내가 언제 이런 병신을 그려오라고 했더란 말이냐"하며 화가를 죽여 버렸습니다.

 

두 번째 화가는 교만했지요. 화가는 양 눈이 멀쩡하게 박혀 있고, 건실한 양 다리로 땅을 받치고 있는 멀쩡한 왕의 그림을 그렸는데, 왕은 "이런 거짓된 그림을 내 후손에게 남기란 말이냐"며 또다시 두 번째 화가를 처형했답니다.

 

세 번째 화가는 고민했습니다. 첫 번째 화가처럼 곧이곧대로 순진한 그림을 그려서도 안 되고, 두 번째 화가처럼 교만하게 없는 사실을 그려서도 안 됐지요. 다음날 세 번째 화가가 그린 초상화는 '한 다리로 무릎 꿇고 앉아서, 한 눈을 지긋이 감고 활을 겨냥하고 있는 늠름한 왕의 모습'이었답니다.

 

아마도 홍보 담당자 입장에서 “순진함과 교만함 사이에는 지혜가 있다"는 얘기처럼 피부에 와 닿는 얘기도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 이 글은 홍보회사 피알원 7본부 장영수 본부장(mediaenter@prone.co.kr)이 기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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