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택 고문의 저널노트> 기업 미디어의 기회

2015. 8. 18. 16:10INSIGHT

32년 동안의 종이신문 기자 생활을 마감하고 2014년 7월 말 정년퇴직한 지 1년이 지났다. 신문 방송 등 올드미디어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얘기야 구문(舊聞) 중의 구문. 하지만 신문사 밖에서 실상을 체감하다 보니 현업에 남아있는 후배들이 더욱 걱정됐다.  
 


종이신문이 사라졌다
아침부터 눈발이 흩날리던 지난해 12월의 어느 날. 출근해 보니 늘 사무실 입구에 가지런히 쌓여 있던 6종의 종이신문이 모두 사라졌다. (참고로 나는 스마트폰과 노트북 컴퓨터로 다양한 신문의 뉴스를 보지만 대학 강의 때문에 신문 기사를 스크랩할 필요가 있어서 매일 종이신문을 훑어본다.) 전에도 몇 차례 일부 신문이 없어진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신문 6부가 몽땅 없어졌으니 이번엔 누구 소행인지 밝혀내고 싶었다. 사무실 입구에 CCTV가 설치돼 있기에 건물 경비실에 확인을 요청했다. 오래지 않아 신문을 가져간 사람을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같은 층에 있는 다른 회사의 여직원 두 명의 소행이었다.

 

두 사람을 불러서 왜 신문을 가져갔는지 물어봤다. 한 명은 “눈에 젖은 부츠 발목이 꺾이지 않도록 신문을 꽂아놓으려고”라고 답했다. 다른 한 명은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의 집 바닥에 깔아주려고 그랬다”는 너무 솔직한 답이 나왔다. 신문을 읽으려고 가져갔으리라곤 애당초 예상하지 않았다. 말이라도 그렇게 해줬으면 하는 기대는 있었지만… 평생 신문기자로 살아온 사람으로서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종이신문이 쓰이는 용도가 다양한 줄이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런 용도로도 쓰일 줄이야.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황당했다.

 

허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1월 30일 내놓은 ‘2014년 언론수용자 의식조사’ 보고서는 전통적인 뉴스 미디어의 위기를 재확인해주었다. 종이신문으로 매일 뉴스를 본다는 응답자는 2011년 21.3%에서 2014년 3년 만에 7.4%로 거의 3분의 1 토막이 났다. 지상파 TV,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 신문사닷컴, 인터넷언론사, 라디오 등을 통한 뉴스 이용률도 모두 추락했다. 반면에 포털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뉴스 이용만 꾸준히 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통계뿐만이 아니다. 나를 포함한 보통사람들이 체감하는 현실도 마찬가지다. 나는 내가 30년 이상 매일 대여섯 가지의 종이신문을 봐왔으니 종이신문 중독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집 거실 소파에 누운 채로, 또는 헬스클럽의 트레드밀을 시속 6km로 걸으면서도 스마트폰으로 거의 모든 신문을 공짜로 보는 날이 많다. 종이신문 중독이 이렇게 간단히 해소될 수 있다는 걸 몰랐다. 포털의 신문보기는 공짜인데다 너무 편리해서 경이로울 정도다.
또 하나 특기할 점은 종이신문들의 뉴스 차별성이 너무 작고 비슷비슷해서 스마트폰의 SNS를 통해 새로운 뉴스를 접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루에 6개 신문에서 구경하지 못한 다양한 소식을 페이스북 같은 SNS를 통해 보는 경우가 갈수록 늘고 있다.

 

이러니 종이신문의 열독률과 구독률이 거의 바닥까지 내려가는 것도 놀랍지 않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종이신문 열독률 및 구독률 연도별 추이 자료에 따르면 2002년 82.1%와 52.9%였던 종이신문의 열독률과 구독률은 2014년에는 각각 30.7%와 20.2%로 내려갔다.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2022년이면 구독률이 0%가 될 거라는 계산이 나온다고 미디어오늘은 보도했다. 이 매체는 한국에서 2026년에 종이신문이 사라질 거라는 컨설팅업체 퓨처익스플로레이션네트워크의 전망도 전했다.

(출처 : 한국언론진흥재단 종이신문 열독률 및 구독률 연도별 추이)

 

뉴스 미디어의 역사를 보면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할 때마다 올드미디어가 사라질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진 뉴스 미디어는 없다. 뉴스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존재하는 한 종이신문이 완전히 사라지는 걸 상상하긴 어렵다. 다만 형식의 변화는 불가피하고 영향력도 계속 떨어지겠지만.    

 

한국은 정보통신(IT) 선진국이고 스마트폰과 인터넷 보급률이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디지털 최강국이다. 그러니 모바일에 의한 뉴스 소비가 늘어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 더구나 언론수용자 의식조사 결과는 뉴스 유통 창구가 SNS와 모바일 기기로 이동하고 있는 현상이 모든 연령대의 공통사항임을 보여줬다. 전 세계적으로 SNS 이용이 갈수록 늘고 있는 만큼 SNS가 갈수록 더욱 막강한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이 되는 건 피할 수 없다.

 

이런 실정이니 소셜미디어가 마케팅과 광고의 주요한 대상이 되는 건 자연스러운 결과다. 세일즈포스가 전 세계 마케터 5000명을 대상으로 2015년 마케팅 계획을 설문조사한 결과 마케터의 70%가 전반적인 마케팅을 위해 소셜미디어 광고에 더 예산을 쓰기로 했다고 지디넷코리아가 보도한 바 있다.

 

(사진 출처 : 왼쪽 https://www.flickr.com/photos/62693815@N03/6276688407/
오른쪽 https://www.flickr.com/photos/68532869@N08/17470913285)

 

올드미디어에서 뉴미디어로! 기업 커뮤니케이션 활동도 변화 모색
기업의 홍보와 마케팅 전략이 변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기업들은 이른바 ‘브랜드 저널리즘’이란 새로운 개념을 발전시켜왔다. 맥도날드 글로벌 CMO였던 래리 라이트가 2004년 뉴욕의 광고 컨퍼런스에서 처음 사용한 ‘브랜드 저널리즘’ 개념은 새로운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 모델로 주목되고 있다. 기업 스스로 브랜드 스토리를 언론의 기사 생산과 편집, 보도 방식을 활용해 브랜드 마케팅 차원에서 활용하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생존의 위기에 내몰린 올드미디어들이 자구책으로 활용해온 뉴스와 광고의 경계 허물기가 자초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브랜드 저널리즘의 맥락에서 ‘기업이 곧 미디어’라는 개념이 등장했고, 홍보와 마케팅을 위해 이른바 ‘뉴스룸’을 운영하는 기업들이 등장했다. 코카콜라는 2012년 11월 기존 홈페이지를 코카콜라 브랜드 저널리즘을 반영한 디지털 웹사이트 형식의 뉴스룸인 ‘코카콜라 저니(Coca-Cola Journey)’를 구축, 운영해오고 있다. 코카콜라는 2014년 보도자료를 절반으로 줄인데 이어 2016년부터 아예 보도자료를 제공하지 않고 ‘코카콜라 저니’를 커뮤니케이션의 기반으로 활용하겠다고 선언했을 정도다. 코카콜라 이외에도 나이키, msn 등 기업들이 뉴스룸을 통한 브랜드 저널리즘 활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애플은 자체 온라인 방송플랫폼 ‘애플 라이브’로 신제품 발표회를 전 세계에 생중계했다. 국내에서도 많은 기업들이 자체 뉴스룸 구축에 나섰거나 준비 중이다. 피알원 또한 콘텐츠 플랫폼 ‘one air’ 론칭을 통해 기업 및 브랜드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올드미디어의 영향력 축소에 따라 기존 매스미디어를 통한 홍보나 마케팅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기업이 외부 미디어에 의존하지 않고 홍보나 마케팅을 직접 주도하는 현상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기업의 자체 미디어 플랫폼과 소셜 미디어의 결합은 홍보와 마케팅 전략의 패러다임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많은 기업은 자기 산업 분야에 관한 한 전문지식, 신기술, 업계 동향 등 다양한 정보를 신문 방송 등 올드미디어보다 더 빨리,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 기업 파워를 활용해 다양한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하면 기존 뉴스 미디어들과 차원이 다른 콘텐츠를 생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브랜드 가치를 제고할 수 있는 새로운 미디어로서의 역할도 충분히 가능할 터이다. 결국 기업의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해 신문 방송에 막대한 홍보 마케팅 비용을 지급하는 수십 년 관행도 변하게 될 것이다.

 

뉴욕타임스의 2014년 디지털 혁신보고서를 계기로 일부 국내 신문사들도 디지털 퍼스트 전략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성공 가능성은 크지 않다. 권위와 콘텐츠의 품질과 신뢰라는 차원에서 다른 신문들과 분명히 차별화한 뉴욕타임스가 영어라는 언어의 강점을 무기로 세계 시장을 상대로 구사하는 전략을 한국 신문들이 벤치마킹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전 세계 올드미디어들이 사양화의 위기에서 자구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공통점이다. 심지어 올드미디어가 머지않아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는 비관적 전망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현실과 함께 소셜미디어가 영향력을 확대하는 속도를 감안하면 기업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변화는 머지않아 ‘모든 기업이 미디어’라는 말을 실감하는 시대가 현실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아니라면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가 되는 것이 훌륭한 생존방식이다. 과거 블로그나 SNS의 확산 과정을 돌아보면 기업의 뉴스룸 확산도 결국 시간의 문제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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