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10년 동안 대행사를 떠나지 못했는가?

2011. 7. 8. 09:12INSIGHT


나는 왜 10년 동안 대행사를 떠나지 못했는가?

나가수와 편곡, 그리고 PR대행사의 가치…’ 


: 곽동원 본부장

PR 대행사 밥을 먹은 지도 10년이 되었다.

그 동안 다른 길로의 유혹도 많았고, 어떤 이들은 냐고 질타했다. 

감히, 당당하게 외쳐본다.

당신들이 커뮤니케이션 편곡의 매력을 아느냐고

 

 

 피알원 곽동원 본부장


소위
판정번복논란으로 방송중지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기도 했던 모방송국의 연예오락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아래 나가수)가 다시금 시대의 트렌드로 각광을 받고 있다. 매주 일요일 나가수가 방송된 직후에는 7명의 출연자가 부른 음악이 음원차트 상위권을 차지하는가 하면,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아침 각자의 터전으로 돌아온 직장인과 학생들은 전 날 방송에서 보고 들었던 음악 및 탈락자 소식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한 주를 시작한다.

나가수의 인기를 지탱하는 힘은 무엇일까? 여러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의 얕은 인사이트로 찾은 키워드는 바로 편곡이다. 수 년 전에 흘러 지나갔던 뻔한 음악을 가수 개인의 특성과 시대의 니즈를 반영한 편곡을 통해 뻔하지 않은 음악으로 재탄생 시키는 과정과 그 결과를 지켜보는 일은 시청자들에게 마치 수년 동안 묵혀 두었던 옷 속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이라도 발견할 때와 같은 쾌감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요즘 나가수에서 순위와 탈락자가 결정되는 모습을 보면 그 기준이 원곡과 얼마나 색다른 리듬과 퍼포먼스를 만들어내느냐인 경우가 대다수이고, 프로그램의 인기와 함께 참여하는 편곡자들에 대한 주가가 고공행진을 하는 현상을 보면 얕은 인사이트에서 나온 생각이 결코 헛된 것은 아닌 듯 하다.

PR대행사 밥을 먹은지도 벌써 10년이 되었다. 그 사이 많은 선후배 동료들이 인하우스 또는 다른 길로 떠났고, 마치 나를 ‘뒷걸음으로 걸어다니는 사람’처럼 신기하게 보는 이들도 많은 게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럴 때 함께 건네오는 “대행사에 뭐 그리 오래 다니냐. (오라는 곳이 그리 없냐…) 뭐가 그리 좋아서?”라는 질문에 이러저러한 이유를 답하기는 했지만, 나 스스로도 한마디로 뭐라 말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이제와 생각해 보면 난 아마도 그 동안 흡사 ‘편곡자로서의 재미’에 푹 빠져 지냈고, 이 재미에서 10년 동안 빠져 나오지 못했던 것 같다.

PR대행사의 역할은 음악에서의 편곡과 유사한 점이 많고, 이에 따라 필연적으로 PR대행사 AE는 편곡자와 같은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흔히 ‘작곡이 원석을 발견하는 일이라면, 이를 보석으로 만드는 일은 편곡’이라고 비유한다. 아무리 좋은 곡도 편곡의 과정을 거쳐 다듬지 않으면 그 가치가 퇴색하듯, 멋져 보이는 기업의 가치 및 커뮤니케이션 소재도 전문가의 손을 거치지 않으면 ‘흙 속의 진주’에 불과하다. 마치 ‘나가수’에서 편곡자들이 그러하듯, 묻혀 있던 소재를 발굴해 해당 기업 및 제품의 상황, 사회적인 트렌드 및 대중의 니즈, 그리고 다양한 PR기법과 노하우를 결합해 창조적인 결과물을 만드는 홍보대행사의 역할은 편곡자와 유사하다. 또 어떤 편곡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탄생하는 결과물이 달라지 듯, 어떤 대행사와 일을 하느냐에 따라 그리고 어떤 Tool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PR의 결과물도 천양지차이다. 이 과정에서 ‘이번 곡은 어떻게 편곡을 할지’을 고민을 하고 내가 만든 곡에 스스로 ‘자뻑’하거나 이에 환호하는 관객들의 흥분에 함께 도취되는 즐거움은 10년간 나를 붙잡은 PR대행사의 마력이었다.

특히 매번 같은 장르의 곡만을 편곡해야 하는 인하우스 홍보담당자와 달리, 항상 새로운 장르의 곡을 편곡해 가는 PR대행사의 업무는 내게 더더욱 매력적이다. 때로는 항상 새로운 장르를 연구하고 배워야 하며, 언제 어떤 장르의 곡에 대한 편곡의뢰가 들어올지 긴장하며 기다려야 하는 생활을 힘들어 하고, 한 장르만을 집중적으로 파는데 적성을 느껴 떠나는 이들도 많지만, 이러한 다양성은 오히려 ‘매너리즘’과 ‘지루함’을 이겨낼 수 있는 리프레쉬가 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 편곡자’에 대한 대우 및 사회적인 인식도 변하고 있다. 작사/작곡만 하면 한 편의 곡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는 시대가 있었고, 편곡이라 해봐야 기껏 템포나 음정(Key)를 변환하는 것 정도로 한정되던 때가 있었다. PR대행사에 대한 인식과 여기에 맡겨지는 업무도 내가 처음 발을 디뎠던 10년 전에는 크게 가치절하 되어 있었다. PR대행사 AE의 근무여건 및 조건도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커뮤니케이션 편곡자’들의 필요성 및 그 일의 중요성을 왈가왈부하는 것이 ‘입만 아픈’시대가 되었고, 여느 대기업 못지 않은 급여시스템과 근무여건을 갖춘 대형 PR대행사들이 등장하고 있다. 더 이상 ‘해외에서 PR대행사의 위상은 이러하다’는 넋두리를 할 필요가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한 분야에 천착되지 않은 다양한 장르를, 나의 손길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물로 만들어 낼 수 있고, 여기에 나의 작업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으니 그간의 10년이 ‘뒷걸음질’이 아닌 ‘앞걸음질’이었음에 분명하다. 그리고 이것이 나와 우리가 앞으로의 10년을 내달릴 수 있는 비전일 것이다. 다만 우리의 편곡작업이 나만의 만족이 아닌,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낸다면 말이다. ‘나는 지금 원곡을 망치는 편곡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원석을 보석으로 만들 듯’ 의미 있는 편곡을 하고 있는가?’ 앞으로의 10년을 준비하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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